* 스포일러 약간!
요즘은 정말 재미있는 드라마가 아니면 집중하기가 어렵다. 원래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인데 나이를 먹은 탓에 웬만한 이야기는 줄줄이 꿰고 있어 더 그런 것 같다. 마거릿 애트우드 원작 드라마다.
주인공 그레이스는 누가 와도 '불행한 삶'에 있어서 뒤지지 않을 것 같은 인물이다. 게다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간추려 보면 이렇다. 여행 중에 자다 일어났더니 엄마가 죽었다. 아빠는 주정뱅이 난봉꾼. 그레이스를 범하려고까지 한다. 술마실 돈이 필요해 그레이스를 부잣집에 하녀로 보낸다. 거기서 겨우 친한 친구를 하나 사귀었는데 그 친구도 그레이스의 눈앞에서 죽는다. 그런데 어쩌나.. 이건 시작일 뿐이다.
시대 배경은 19세기 초인데, 사람 목숨이 참 우습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로 사람이 죽어나간다. 아마 현대인 중에 죽음을 제대로 인지하며 사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그래도 힘든 삶은 살아온 사람은 주인공의 고통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나는 사실 결말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작품을 통해 얼마나 깊은 생각에 빠지는지, 새로운 생각이 드는지, 허구 안에 얼마나 진실이 담겼는지 따위가 중요하다. 무엇보다 스티븐 킹이 말했듯, 긴박감이 중요하다.
'그레이스'가 얼마나 영리한 작품인가 하면, 추리소설처럼 살인 사건을 소재로 하면서 여성의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만든다. 지금도 여성의 입장에서는 불합리한 일들이 무수히 많겠지만, 그 시절은 말도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게다가 약자의 삶을 대변하기도 한다.
어떤 형태의 폭력이든, 폭력이 무지에서 온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안다. 여자의 인권이나 약자의 인권을 무시하는 인간들은 무지해서 그렇다. 여기서 무지함이란 학력 수준과는 별개다.
한편 해리성 장애, 다중인격에 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인간의 뇌란 참으로 신기하다. 재기 불능의 최악의 상황에서도 인간의 뇌는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한다. 물론 다중인격, 이중인격과 같은 문제가 100% 증명된 것은 아니지만 정신적인 고통을 어느 정도 겪은 사람이라면 충분히 고개를 끄덕일 만한 문제였다.
이야기가 샜는데, 결론은 재미있었다는 말이었다. 잔인한 장면이 좀 있으니 심장 약한 사람은 주의하시길. 심약한 사람도 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