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주의!
우울증,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도 감정 주의.
꿈과 현실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보통 자면서 꿈을 꿀 때는 꿈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데, 간혹 '이건 꿈이야.' 인지하는 경우가 있다. 바로 이것이 자각몽, 루시드 드림이다. 자각몽은 때때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꿈을 유도할 수 있다. 영화는 무의식과 꿈 사이의 가설도 내놓는데, 일단 이런 종류의 소재에 흥미있는 사람이라면 바닐라 스카이가 지루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영화는 자각몽은 물론 트라우마도 다룬다. 우리는 살면서 여러 가지 지독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 중에는 '미친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괴로운 경험도 종종 있다. 바닐라 스카이의 주인공 데이빗이 바로 그런 일을 경험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처음부터 알거지인 사람보다 재벌이었다가 알거지가 된 사람이 더 괴로울거라고 생각하는데, 데이빗이 바로 그런 경우다. 깊은 상처를 가진 사람일수록 영화에서 느끼는 바가 더 많을 것 같다.
오래 전 처음 바닐라 스카이를 봤을 때와 지금의 내가 영화를 보는 시선이 바뀌었다는 것을 느꼈다. 처음에 이 영화는 내게 너무 무거웠다. 주인공의 삶을 열심히 따라가고 났더니 숨이 막혔달까. 영화가 끝나고 다시 현실로 복귀하는 과정이 험난했다. 가슴을 죄어오는 먹먹한 느낌을 아직 기억한다. 지금은 영화에서 현실로 빠져나오는 과정이 그전처럼 어렵지 않다. 오히려 무거운 영화를 본 뒤에 개운함 마저 느껴진다.
영화나 드라마, 웹툰, 소설 등 이야기를 전하는 매개체들은 기본적으로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 우리는 이런 이야기들 속에서 우리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일부 확인하게 된다. 메시지는 교훈과는 좀 다르다. 나는 교훈이라는 단어가 가진 이미지를 싫어한다. 마치 초등학교 도덕 시간에나 가르칠 법한 그런 이미지다. 교훈은 초등학교 도덕 시간에 배운 걸로 충분하다. 내가 말하는 '메시지'는 개인만이 해독할 수 있는 암호에 가깝다. 바닐라 스카이에서도 그런 즐거움이 있었다. 잃어버린 나의 무수한 조각들 중 하나를 되찾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