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주의.
현대인의 가슴 속에는 불씨가 숨어있다. 아니,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을지도. 우리는 그 불씨의 정체를 잘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아는 사람들은 안다. 가슴 속의 '화'가 일종의 고장인 것을.
제목은 '사랑'인데 그다지 로맨틱한 내용은 아니었다. 찌질남과 미녀가 얽히는 전형적인 설정이 식상했지만,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던 작품이다.
라디오 방송국 프로그램 매니저로 일하는 미키는 알코올, 담배, 마약, 애정, 섹스 중독이다. 뭐 그런 중독이 다 있나 싶지만, 생각해 볼 만한 문제다. 곰곰이 따져보면 나도 알코올, 담배, 애정 중독이고 누구나 어느 정도는 중독을 달고 살아간다. 내가 중독에 빠진 이유는 행복의 부재가 가장 큰 이유였다. 현재의 삶이 만족스럽고 행복하다면 중독으로 자신을 괴롭힐 별다른 이유가 없지 않을까. 중독의 위험성은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자연스레 '관계'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된다. 관계를 맺고 살다 보면, 사귀는 시간이 지속되면서 상대방의 새로운 점을 하나씩 알게 된다. 대부분 사람들은 약점을 가지고 있고, 얼마간 부서진 존재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 때까지 나는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러브'의 주인공인 거스와 미키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수많은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1부터 10까지의 숫자에서 관계가 가까울수록 10에 수렴한다고 가정해 보자. 나는 남녀관계, 그러니까 사랑이라면 단번에 10에 수렴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관계'라는 것이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았다. 일단 남녀관계는 9.9까지 갔다가도 단번에 0이 되어버릴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것이었다.
나는 한 여자를 만나면 다른 관계를 1로 되돌려버리는 데 익숙했다. 다르게 말하면 복잡한 인간관계가 버거웠다. 그러다 보면 가장 가까운 한 사람에게 의존하게 되는 경향이 생긴다. 일종의 함정에 빠졌던 것이다. 맞다, 그것은 나약한 사람에게 찾아오는 달콤한 감정의 덫이었다! 의심의 여지 없는. 소울메이트 한 사람만 옆에 있으면 모든 일이 술술 풀릴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젠장. 어쨌거나 지금은 모든 관계에는 적정 거리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차근차근,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의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