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첫 번째 소설로도 나쁘지 않을 듯. 하지만 소설을 읽은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에게는 버거울지도 모르겠다. 두께 때문이다. 세 권인데다 책이 제법 두껍기까지 하다. 양에 비해 글은 잘 읽히는 편. 개인 차는 있겠지만.
그전에 읽은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처럼 두 주인공의 시점을 교차로 서사한다. 각각 남자와 여자다.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접할 때, 삶의 유한함이나 감동을 맞닥뜨리게 되면 가슴이 답답하다. 실제로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돌아보면 하루키 소설 중에는 '노르웨이의 숲'이 가장 그랬다. 힘든데, 그래도 끝까지 읽어야지 싶더라. 물론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만약 그렇다면 소설 따위 읽지 않았겠지. 고통 뒤에 맛보는 열매는 다디달다.
소설을 좋아하게 된 것은 몇 년 전인데, 덕분에 패러다임이 적잖이 변했다. '과정'으로의 초대였다. 그전까지 나는 지독한 결과론자였다.
두 갈래로 갈라지곤 하는 하루키 소설에 심취하게 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나 역시 실제로 그런 일을 경험했다. 재작년 여름이었다. 내 인생이 둘로 갈라졌다. 어쩌면 내가 인생을 절반쯤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황발작을 겪었고, 삶이 뒤틀렸다. 공황발작이 삶을 둘로 가르는 척도가 되었다. 1Q84년의 하늘에 떠 있는 두 개의 달처럼.
30년을 넘게 살았지만 새로 시작된 삶은 더 어렵다. 그전까지 당연하던 일이 그렇지 않아지고, 불투명하던 일에는 더 짙은 안개가 드리웠다. 허우적거리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그런데도 꾸역꾸역 살아가야 한는 것이 너무 힘들다. 별로 삶이 즐겁지도 않은데 죽음이 두렵다는 것이 신기하다. 이 느낌은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