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게임을 좋아한다. 스타크래프트부터 게임을 놓은 적이 별로 없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게임이 즐겁지가 않았다. 친구들과의 경쟁은 둘째 치고, 어느 순간부터 강박적으로 게임에 몰두했기 때문이다. 중독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리그 오브 레전드도 친구들과 함께 시작했다. 경쟁하는 것을 좋아해서 롤에서도 랭크 게임을 주로 했다. 롤이 대한민국에 상륙하기 전부터 했지만, 내 최고 티어는 골드 2였다. 아이러니하게도 티어에 집착할수록 점수는 떨어졌다. 비록 게임이었지만 나는 사람의 능력이 정해져 있고, 누군가는 더 우월한 유전자를 가졌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다. 그럴수록 랭크 게임의 티어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게임일 뿐이었지만 한편 우울했다. 내가 그것밖에 안 되는 인간이라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다.
어느 순간부터 게임을 하면 스트레스를 받는 사실을 인지하고 몇 개월씩 게임을 하지 않았다. 게임에 집착하고 싶지 않았다. 이게 뭐라고, 하는 마음으로 어쩌면 게임을 피했다. 가끔 게임을 켤 때면 즐거운 마음으로 플레이하려고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지면 기분이 나빴기 때문이다. 그렇게 드문드문 게임을 하면서 최근 거의 1년여 시간 동안은 게임에 손 대지 않았다.
하는 일이 벽에 가로막혀 다시 리그 오브 레전드를 켰다. 전략적 팀 전투라는 것이 눈에 띄었지만 하지 않았다. 나이가 들고부터는 새로운 게임을 하는 것이 싫었다. 안 그래도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던 대로 솔로 랭크를 돌렸다. 졌다. 또 졌다. 기분이 나빴다. 최근 들어 게임을 하며 감정이 상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기분이 틀어지면 게임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전략적 팀 전투를 하게 되었다.
리그 오브 레전드를 베이스로 하고 있지만 전혀 다른 게임이었다. 한 달여간 흔히 롤토체스라고 불리는 전략적 팀 전투를 즐겼다. 순수하게 즐기기만 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그전처럼 집착과 강박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정말로 게임을 즐길 때도 있었다. 최근 들어 어떤 믿음이 생겼었다. "게임은 즐기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것. 스스로를 증명하거나 타인과 비교할 잣대는 필요 없다.
솔로 랭크를 하며 처음 골드 티어를 달성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기분이었다. 그때는 "거봐! 내가 뭐랬어?" 하는 마음이었다면 이번에는 덤덤했다. 따지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니다.
게임과 삶은 서로 닮았다. 삶에서 집착과 강박을 덜어내기 쉽지 않은 것처럼 게임도 마찬가지다. 삶에서 겪는 감정적 어려움을 게임 안에서도 똑같이 겪게 마련이다. 나는 그전까지 실생활에서 사회적, 감정적 고통에 시달렸다. 최근에는 좀 달라졌다고 느꼈는데, 증명할 길은 없었다. 그저 어렴풋이 달라졌다는 느낌뿐. 나는 롤토체스가 내 삶의 일부가 달라졌음을 증명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정서적으로.
짐작컨대 내가 플래티넘을 달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조금이나마 순수하게 게임을 즐겼고, 승패에 좌지우지 되지 않았던 탓이라고 생각한다. 정서적 안정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게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이들 중에는 젊은 사람들이 많다. 나는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게임도 잘하고, 잘 즐긴다고 믿는다. 편안한 마음으로 게임에 몰입하는 것과 질까봐 초조해하며 임하는 것은 질적으로 다르다. 삶도 마찬가지다.
많은 어린, 젊은이들이 게임으로 자신을 증명하려고 애쓴다. 대부분은 자기가 그렇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저 게임을 좋아한다고 착각할 뿐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사실은 스스로 깨닫기 전에는 알기 어렵다. 과연 "나는 게임을 제대로 즐기고 있을까?" 한 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 깊이. 게임을 주제로 말하긴 했지만 인생에 대한 문제나 다름없다.